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방여사 환갑에 자동차 운전면허 도전

반응형

방여사의 환갑에 자동차 운전면허 도전. 

화창할 날이면 도로를 달리며 나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나의 고향집이다.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고향집에 간다. 집에 갈 때면 어머님께서 금방 만들어 주신 밥이 제일 맛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렸을 땐 그저 당연 하게 받아 들였지만 지금은 나에겐 참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요즘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왠지 나만의 행복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밥을 차려 주시곤 반기는 것도 잠시, 이내 거실에 누워 TV 보시다 주무시곤 한다. 그런 반복적인 생활이 지겨우신지 가끔 사소한 것에 언성을 높이시기도 했다. 그때는 왜 그러신지 알 수 없어 자리를 피하거나 가끔 나 역시도 목소리를 높였다. 곁에서 지켜보니 어머니는 그런 생활에서 탈피하고 싶은 무언의 외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로써도 참 안타깝다. 물론 일을 전혀 하지 않으시는 건 아니다. 주중에는 조그마한 이틀에 하루 쉬며 용돈 정도는 버신다. 허나 주말이면 항상 같은 일의 반복이다, , TV, 잠 딱 이 패턴이다. 그러던 중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옆에서 지켜보니 참 아까운 시간을 그냥 보내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재미없게 사시는 것이다. 요즘 다른 tv 프로그램에 보면 노인 분들께서 해외여행도 가고, 2의 인생을 사시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어머닌 이제 60세 이신데,. 사는 건 80~90대이신 분들 보다 못 즐기시는 듯했다. 물론 아버지께서 계신다 하지만 풍으로 쓰러져 이제는 본인 스스로 재활운동을 하는 것에만 만족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어머니께서 모든 일을 혼자 하신다. 그럴 때면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 타 지역에 산단 이유만으로 부모님을 돌보지 않은 것이 참 죄송스럽다. 또한 앞으로 내가 외국에 나가는 선택이 부모님을 더욱 고생 시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더 제일 염려스러운 부분은 어머니가 혼자 무거운 장을 보거나 어딘가를 이동 하시는 것이다. 어느 집 아들이 본인 집에 놀러 오신 부모님을 모셔다 드려야 하는데, 어머니가 피곤한 아들 귀찮게 하는 게 아닐까 싶어 부모가 스스로 전천을 타고 가는 것이다.는 것이다. 그 아들은 값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지만 그 부모는 걸어 다닌다. 게다가 자식 먹일 반찬을 바리바리 싸서 양손 무겁게 오셨던 것이다. 마음이 먹먹하다. 요즘 저런 상황이 우리 부모님에게 생기는 건 아닌지 내내 마음이 걸린다.

부모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식에게 시키거나 부탁을 못한다고 한다. 지금의 저희 어머니도 친할머니께서 이런 상황이 똑같이 발생했을 때 왜 태워 달라는 말을 왜 못하시냐고, 자식들에게 화도 내시고 용돈도 달라고 하고, 그 만큼 키워 줬으니 큰소리도 치시라고. 그런데 어머니가 할머니 나이가 들면서 자식들이 불편해 진다고 한다. 친할머니께 그런 말 하신 우리 어머니께서도 요즘 들어 자식들에게 그런 말을 못 한다고 하신다. 단지 자식이 불편해하지 않길 바란다고. 친할머니께서 왜 그런 말을 못 하는지 이제야 이해된다고 하신다. 할 말은 하고 살자는 신조를 가진 어머니께서 그런 말을 하니 내내 죄송스러웠다.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였다. 그러나 나 역시도 회사에 다니느라 시간에 쫓기곤 하면 부모님께 화부터 내곤 했다. 회사 임원들이라도 타면 부모와 임원들의 다르게 대하는 나의 이중성에 놀라곤 한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 줄까 하던 중 어머니의 새해 다짐이 생각났다. 늘 매년 마다 다짐하는 어머니의 운전 면허 취득. 그것을 돕고자 했다. 물론 어머니께서 매년 새해가 되면 따야지 하면서 미룬 시간이 무려 3여년이다. 또한 내가 말을 꺼내도 할거라면서 몇 번을 미루셨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어머니께 저녁 먹으러 간다 해놓고 어머니를 학원 등록을 시켰다. 어머니는 해본 적 없고, 두려워서 자신 없어 하였지만 바로 등록 시켰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 반대도 심했다. 지금 이 나이에 왜 면허를 취득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려와 과연 운전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나를 제외하고선 어머니가 운전하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그 이윤, 나이가 많아 시험보기도 어려우실 것이고 또한 눈도 침침해 공부하시기도 힘들며, 책상에 앉아 있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힘들고 위험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난 엄마가 운전면허 취득하기를 원했고 엄마 또한 완고히 원하는 부분이었다. 또한 마지막 히든카드로, 달갑지 않으면 본인이 직접 어머니 다 모시고 다니라고 하니 완고함을 한 풀 꺾을 수 있었다.

60이란 나이가 많을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아직도 뭔가 배울 수 있는 나이론 충분해 보였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자식 키워오느라 본인의 시간을 희생하면서 사셨는데 이제는 당신을 위해 오롯이 살기 바랬다. 모든 자식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없기에 자식 눈치 보지 않고 사시기 바라는 마음에 나와 어머니의 의지대로 진행했다. 사실 나 역시도 어머니를 걱정되진 않는 건 아니다. 설사 엄마가 면허를 취득하더라도 운전 못할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난 어머니가 매일 집안에서 저녁식사 후 티비 보시며 주무시는 모습을 보면 미안했다. 직장 다녀 온 후 저녁을 드신 후 tv보면서 스르륵 주무신다. 자식들을 자기 살기 얼마나 바쁜지 어머니와 어디 한번 모시고 가기가 참 힘든가 보다. 누굴 탓할 필요 없이, 나 또한 그렇게 살지 않았던가! 그래 자식이 하지 못한다면 어머니가 스스로 할 수 있게끔 도와주자 또한 어머니께서 강력히 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또한 더욱 자식들이 불편해 지기 시작해서일 것이다. 자식이 그럴려구 그런 마음이 아니더라도 말이다그래서 당신께서 차 운전을 통해 마음 것 다니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부분을 가지고 도와 주기는커녕 못하게 한다면 우리가 어머니를 더욱 힘들고 고되게 만드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데 자식들에겐 말은 못하고 혼자 하려니 힘들고 어머니께서 자식의 손을 빌리기보다는 본인 스스로 해결하시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 어머니가 모든 고생 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언젠가 친척 할머니 중 팔순 할머니께서 한 여름에 1.5킬로 되는 곳을 5번을 쉬어가며 거침 숨을 몰아 가며 걸어가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자식 다 잘 가르쳐 났지만 결국 혼자 숨 고르시면서 머리에 짐이고 터미널 가는 모습에 눈물이 끌썽거렸다. 머리에 이고 가시는 게 아마도 자식 손주 먹일 손수 만드신 음식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어머니가 생각났다. 우리 어머니의 미래도 저런 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차라리 먼저 하고 싶은 것을 하실 수 있도록 도와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굳혔다. 물론 혼자 열심히 사시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해하진 않기 바란다. 또한 다른 바람이 있다면 어머니가 운전면허 공부를 하며, 공부에 재미를 느끼시길 바라고, 그로 인해 배움과 앎의 재미를 알게 되셨으면 했다. 책을 가까이 했으면 하는 바람, 많은 사람과 어울려 지냈으면 하는 바람, 취미생활이 많이 생기시길 바라는 그런 마음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첫 날 운전면허 학원에 다녀오고 나니 어머니가 한껏 격양 됐다. 선생님이 너무 재미있고 필기 강의실에서 다른 어르신들과 배우니 정말 좋다고 하신다. 그리고 진작에 배울걸 그랬다며 아쉬워하시기도 했다. 또한 학원 선생님께서 환갑에 면허 배우는 건 전혀 늦은 게 아니라고 여든 넘으신 분들도 1년째 도전하는 분들도 계시다고 하니 어머니께선 너무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론 주변 사람들이 할 수 있다고 하니 지금에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즉 용기가 생기셨다. 그로 인해 어머니가 면허 연습을 하면서 몇 가지를 변한 모습을 느꼈다.

우선 첫째 나는 어머니께 돋보기 안경을 선물하였다. 어머니가 돋보기안경을 받게 되어 책을 보는 게 매우 쉬워졌다며 정말 좋아하셨다. 오래 전 매번 문자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드려도 잘 늘지 않았다. 몇 번을 가르쳐줘도 잊어버리시고 금방 가르쳐줘도 또 까먹으신다. 그럴 때면 화도 내고 답답하였으나, 다른 이유가 있었단 걸 몰랐다. 바로 핸드폰 액정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버튼이 잘 보이지 않아 매번 다 비슷한 모양으로 보였다고 하신다. 그러나 지금은 돋보기안경을 쓴 후부터 문자를 보내시기 시작했다. 안경이 생기고 나서부터 서투르게라도 문자를 보내게 되었다. 실로 우리 집에 엄청난 사건이었다.

둘째, 면허학원에 가니 친구 분들도 만드시고, 또한 그 사람들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늘 어머니의 식당의 다른 어머니 분들과 아버지 인맥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 만나니 얘기 나눌 사람이 생겨 정말 좋다고 한다. 어머니가 운전면허를 통해서 면허 따는 게 목적이 다가 아니라 다양한 분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배움의 시발점이 되는 자리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그 점도 어느 정도 깨달으셔서 나로써도 정말 기뻤다.

셋째, 어머니가 ‘진작 할걸’ 그러는 것이다. 아마도 자신감 회복으로 인해 즐거움을 찾으신 것 같다. 매번 뭔가 하시면 무서워하시고 어려워하셨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아 낸 것 같다. 내가 어릴 적 멋있어 하는 엄마의 모습을 조금은 찾은 듯 했다.

 또 그런 모습을 보니 나도 내 자신에 되짚어봤다. 나도 내 인생을 살면서 나 스스로에게 어떤 일을 해서 다 못하거나 실패했을 때에 아쉬움은 많지 않았다. 후회가 있다면 더 열심히 할 걸 정도이다. 그러나 제일 아쉽고 후회스러웠던 것은 해보지 않고 그저 시일을 미뤄 결국엔 못한 일이 계속 아쉽고 머릿속에 남는다. 겁도 나고, 무섭고, 어렵고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들다 보니 결국 행동하지 못하게 됐다. 간단히 생각만 해도 며칠 전에 있었던 강연장에서 누군가에게 궁금한 점이 있어도 손들고 질문조차 하지 못했다. 또 바쁘다는 부모님과 시간도 못 보내고, 미인을 보고 용기조차 없어 인사조차 못하는 등 이 밖에도 많다. 어머니를 통해나마 나역 역시도 변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아야겠다는 다짐했다.

어머닌 필기 시험에 스트레스 받아 힘들어 하시지만 어떻게든 합격 하겠다는 집념이 대단했다. 내가 엄마를 한참 잘못보고 있었다. 어머니를 너무 얕잡아 봤고 또한 우리 엄마란 선입견으로 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10분도 못 앉아 있을 거란 생각했지만 2~3시간은 기본으로 앉아서 공부하셨다. 그렇게 우려스러운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장내(?) 시험을 간신히 합격하게 됐다. 그 후 도로 주행은 몇 번에 실패를 거듭하여 결국엔 면허증을 손에 거머쥐게 되었다.

면허를 딸 때 어학연수를 나가 있는 나로썬 같이 축하 해 주진 못했지만, 추후 전화로 통화 할 때 정말 대견하고 어머니가 자랑스러웠다. 전화기를 통해 듣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강한 긍정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그러고 난 후 귀국 후 연습용 차를 사서 도로연습 중이다. 물론 내가 옆에 앉아 가르칠 때마다 어머니보다 내가 더 좌불안석이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운전 연습을 마치고 집에 가던 중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불연 듯 어머니께 궁금한 점이 생각났다.

“엄마! 엄마가 만약에 이 면허를 30여 년 전에 취득했다면 엄마 인생이 달라졌을까? 어땠을까?” 하고 물으니 “아마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을 걸” 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만 하시고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오는 내내 ‘그랬을까? 정말 어땠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나 그 답은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엄마의 대답과 나의 의견이 동의 한다는 결론 내렸다. 어머니가 만약에 운전면허를 가지고 계셨다면 엄마의 큰 인생 터닝포인트이거나 큰 변환점이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버킷리스트를 정해 그 중 자기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3가지를 정해 그 일을 하라고 말했다. 나 역시도 뭔가 나의 필살기는 아니지만은 나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줄 것이 영어가 하나라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어머님은 운전을 해서 전국을 다녀 뭔가 만드셨겠지만 나는 영어를 배운다면 세계 속을 활보할 수 있는 최소한에 면허증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했다.

얼마 전 가족들 모임에서 앞으로의 나의 대한 얘기 하는 중 해외 나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비난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30대 중반에 돈도 없이 나가서 뭐 할 건데, 그래서 뭘 얻어 올 건데, 아는 사람은 있어? 온갖 물음에 확실하게 대답 할 수 없었다. 정해 진 것 하나도 없었다. 그 후 나의 길에 물음표가 생겨 또 방황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을 다시 잡아준 분이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께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 하신다. 뭔지 모르겠으면 네가 더 하고 싶을 걸 하면 된다고 하셨다. 결국 나도 방황을 끝내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정했다. 어릴 적 될 때로 되라 라고 살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내 자신을 너무 사랑 하는가 보다. 한발 한발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미 난 결정했다. 내가 가야 할 방향으로 천천히 한걸음씩 걸으면 된다. 어머니 차에 붙은 “초보운전 먼저가세요!!”과 같이 하면 된다. 나도 역시 초보마음으로 천천히 전진해 갈 것이다. 어머니가 미치도록 자랑스럽다.

 

반응형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원의 행복  (0) 2017.10.28
입문용 드론 CX-10D - 미니드론 후기  (0) 2017.09.29
네트워크 구조  (0) 2017.02.19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신가요?  (0) 2017.02.16
베네수엘라 카타툼보(Catatumbo)  (0) 2017.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