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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99 숨결이 바람 될 때 - 폴 칼라니티 지음 /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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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참 아련하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하지만 촉망받던 한 젊은 의사가 말기 암환자가 되어 대척점에 놓인 상황이 참 아이러니했다. 한편으론 의사로서 펼쳐질 미래가 한순간에 와르르 깨지는 것 같았다. 마치 대나무가 수년 동안 인고의 시간을 겪고 싹을 틔우려는 찰라 그 싹을 송두리채 뽑아 버린 것 같았다

주인공 폴은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석사과정을 밟는 중이였다. 의사의 길을 걷고 있지만, 이 친구는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문학에 뜻을 갖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의학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죽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아마 죽음이라는 명제가 철학적으로 다가왔고, 그 죽음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의사였기 때문이다. 그가 독서를 통해 죽음을 체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있는 방법이 신경외과 의사라 생각했다. 의사로서 죽음을 마주 보는 시간은 힘들고,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그에게 있어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는 의과 생활은 즐겼고 졸업할 때 그는 졸업생 중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이러한 생활은 계속됐으니, 레지던트 기간이 끝나 갈 무렵 그를 모셔가기 위해 각 병원은 자신이 받고 있던 6배의 봉급과 각종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받는 건 당연해 보인다. 허나 신이 그를 시기하듯, 그는 거의 다다른 목적지를 목전에 두고 암선고를 받게 된다. 그리고 능동적인 의사에서, 받아 들여야 하는 환자로 변하게 된다. 항상 뭔가 나눠주는 입장에서 수용하는 입장이 되었다. 정말 생각치도 못한 뜻밖의 대척점 관계가 되어 버렸다. 다행히 그의 암은 항암제를 복용과 치료에 의해 차도가 보여 결국 병원에서 퇴원하게 된다.

얼마간의 휴식을 갖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의 삶을 소중히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일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심신이 온전하다고 할 수 없지만, 점점 자신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음과 동시에 다시 예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의사의 모습을 찾고자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바램과 달리 그런 행동으로 인해 심신에 무리가 되어 암이 재발하게 된다. 물론 폴은  재발의 여러 징후를 초기에 눈치챘다. 그러나 그러한 증상을 애써 부정해 버리거나 다른 증상이라고 무시해버렸다. 아마도 재발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고,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모든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고 하지 않던가. 결국 상황은 악화되어 암은 더이상 어떤 항암제와 그 무엇으로도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그의 생명을 더 연명할 수 있는 길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두 갈랫길에 서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족과 인사를 나누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이로써 한 젊은 청년이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을 읽어서 인지, 아니면 왜 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읽는동안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만약 10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할거라 생각하지만 아니다. 오히려 더 잘 놀았으면 한다. 그 당시에는 공부를 전혀 안했지만 그렇다고 잘 놀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태도다.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도 그렇다.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만 한 채 시간을 흘려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싶다. 하루 24시를 좀 더 알차고 '잘' 보내고 싶다. 이 책에서도 암을 치료하고도 나중에 다시 의사로 돌아가 더욱 자신의 일에 더욱 매진하는 것. '무엇'과 '어떻게'가 참 중요하다. '누가 내일 멸망하더라도 한그루 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이 무엇을 하며 살기보다는 '100% 온전한 나의 하루를 산다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닌가 싶다. 내 스스로도 오늘 하루를 온전히 나의 하루를 살았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빌게이츠가 강력추천 했다는 말에 읽게 됐다. 읽게 된 동기는 단순하나 이 책의 이야기는 간단하지 않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그저 평범한 나라면 욕심을 버릴 수 있었을까? 아니면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노렸했을까? 내 몸이 그런데 다른 환자를 볼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질문이다.

또 인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지는 것이 옳은걸까?. 또 그런 주장이 타당하다면 안락사의 기준을 과연 무엇으로 정할 수 있을까? 몇몇 나라에서 안락사를 시행하지만 본인의 선택과 가족등에 동의에 의해진행된다지만 과연 자발적일까? 누군가는 돈에 의해, 누군가는 가족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할 것이다. 그게 정말 옳은 것일까?

이게 실화라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실화라는 말에 조심스럽고 과연 내맘대로 해석한다는게 뭔가 좀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어려운 환경에 놓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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